조선시대 사역원은 외국어를 가르치던 기관이었다. 15세 이하의 어학자질이 출중한 자를 뽑아 역관을 양성했다.
역관은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부유해질 기회가 많이 있었다. 장희빈의 아버지도 일본을 오가는 역관이었고 매우 부유했다고 한다.
사역원 안 우어청에서는 외국어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이를 어길 시 매질이 가해지고 5회 이상 우리말을 사용하면 퇴학처리당했다.
우리나라의 외국어 학습의 전통은 회화 위주 다이얼로그 암기법이었는데 귀화인 등 네이티브 스피커를 활용해 직접 대면 대화를 하는 것을 중시여겼다. 그러다 일제강점기때 문법위주 교육으로 바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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